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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그는 새가 되어 하늘로 돌아갔다
작성자김 * *등록일200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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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가 되어 하늘로 돌아갔다
- 극단 ‘여행자’의 <소풍>을 보고 -

막걸리, 천진난만한 웃음, 목순옥, 귀천......

5년 전 서울을 올라와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은 ‘귀천’이라는 찻집이었다. 그 곳은 기인이라 불리던 천상병시인의 미망인 목순옥님이 운영하는 찻집이라는 것과 줄을 서서 기다려야할 정도로 자리가 좁으며, 그 기다리는 동안에 사람들은 ‘귀천’이라는 시를 떠올리며 시인이 된다는 말 때문이었다.

허름하고 비좁은 골목에 자리한 ‘귀천’은 어른들 10명이 가 앉으면 실내가 꽉 찬 느낌의 찻집이었다. 그곳엔 직접 담으셨다는 ‘모과차’가 유명한데, 지금 인사동에 하나 더 낸 가게에서도 ‘모과차’는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엔 그 시 속에 들어있는 시구인 ‘소풍’이란 제목으로 연극을 올렸다하기에 멀지만 의정부 예술의 전당을 찾게 되었다.

손끝이 얼얼한 데 객석에 앉자 무대 왼 켠에 자리한 음악이 감미로움을 더해주었다. 생음악이 가미된 연극은 자칫 잘못하면 극의 중심을 잃기 쉬운데, 극 중 천상병의 대사에 거의 그의 시가 쓰였듯이, 음악 또한 그의 시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책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가 서울대 상대를 중퇴했지만 그는 늘 시를 사랑하는 총명한 청년이었다. 부산시장 공보비서로 일할 때 축사를 시처럼 쓴 그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인의 길에 전념한다. 그러던 중 그의 친구  강병구에게서 받아쓴 용돈이 공작금으로 오인된 1967년 7월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러야했다.

그는 그 곳에서 받은 고문과 그의 시작노트가 찢긴 상처로 인해 정신황폐증과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고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있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한동안 그가 나타나지 않자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의 유고시집 <새>를 발표하며 서러워한다.

하지만 그는 곧 그들 곁으로 나타나고 결국 그의 친구 동생인 목순옥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늘상 말했던 ‘가난’은 그의 직업이 되어 그의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받은 돈으로 그의 ‘주벽’을 심화시킨다.

그것은 그가 겪은 중앙정보부에서의 일이 실마리라 할 수 있다. 그의 순수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짓밟히고 자기 살처럼 여기던 시작노트가 갈기갈기 찢기워진 것을 본 것은 마치 그의 여린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기 때문에 그는 사회로 나가는 일이 두렵고, 주변인의 삶을 살아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 이후 어린 아이도 쓸 수 있는 시처럼 보여지던 것은 단순히 시는 쉽게 쓰여져야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것은 정치적 현실 속에서 짓밟힌 그의 순수 이성이 상처를 입은 것이리라. 그로 인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옅어지고, 그럴수록 그는 그가 왔다는 하늘과 가까워지면서 별들을 노래하고 날개 짓을 연습했는지도 모른다.

누군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까. 하지만 그에겐 목순옥이라는 그만의 반려자 ‘옥’이 있었고, 밥처럼 사랑하던 ‘막걸리’가 있었고, 브라암스의 따뜻하면서도 눈물이 나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었고, 그의 삶 자체인 ‘시’가 있었기에 자유로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 지상에서 목순옥의 품 속에서 간경변증을 달고 새가 되어, 돌아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 속엔 그의 말 못했던 순수의 상처가 오롯이 담겨있을테다. 그리고 그는 아름다운 비행을 하면서 그가 편히 살지 못했던 세상에 똥을 누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서 그는 말했을까. 소풍 간 곳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문단의 마지막 순수 시인‘,’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은 돌아가서 말했을까.
소풍 왔던 곳에 대하여......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찌 들으면 세상을 조롱하는 듯도 들리고,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의 울음(웃음) 같기도 하고, 아름다이 살다갔으나 못 다한 생에 대하여 허허로운 웃음을 토하는 듯도 하다.
  
이 극을 보면 상징적 장치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천상병이 가는 곳마다 가로등이 있다.
그의 삶에 위로와도 같은 가로등 불빛은 어떨 땐 그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어떨 땐 그의 누추함과 자의식의 비참함을 가려주기도 하고, 어떨 땐 그의 사랑 목순옥과의 사랑을 비춰주기도 하고, 그의 삶의 길에 인도자로서 비추기도 한다.

둘, 그의 희망이며 그의 내면의식을 닮은 ‘새’들이 춤을 춘다.
‘새’는 그의 본질적 자아를 닮아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그는 자유를 만끽하고, 그가 마치 전생의 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빛깔의 고귀하면서도 여리여리한 깃털들의 펄럭임은 조심스럽기까지 한다. 마치 그의 순수의 마음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그로테스크한 의상으로 나와 춤을 추는 모습에서 미묘한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셋, 움직이는 무대 장치와 보일 듯 말 듯한 암전이 있다,

움직이는 무대장치(뱃놀이, 병원 담벼락과 침상, 그의 좁은 방, 귀천 찻집)를 통해 극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극적 장치를 다 보여줌으로써 한 컷 한 컷의 장면을 집합적으로 사고케 하여 세월을 정지시켜 추억케 한다. 또한, 보일 듯 말 듯한 암전은 객석이 극에 갖는 차단을 보류시키고 다음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가는 역할과 함께 호기심을 갖게 한다.

넷, 극을 극답게 살린 노래와 음악이 있다.

시인의 시를 노래로 피아노, 클라리넷, 플룻, 바이올린. 전자오르간이 함께 한 음악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극의 여백을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장르의 확대와 바탕 그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할 수 있다.  

그가 좋아했던 브라암스와 음악처럼 그는 브라암스의 연인 클라라처럼 목순옥도 사랑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시 “음악” 속에 나오는 ‘파락호’는 그럼 그가 아닐까. 그 ‘파락호’를 사랑한 이는 당연 ‘목순옥’ 일테고!

목순옥은 천상병시인 12주기를 맞이하며 그를 “기쁨도 슬픔도 행복으로 알았던 순진무구한 일곱 살짜리 남편이었으니까요.”라고 회고한다. 그가 "red complex"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김수영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그도 누렸을까. ‘자유’라고 다 ‘자유’는 아니었겠지만. 그를 떠올리는데, 엉뚱하게도 김수영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생각난다.

그리고 내게 물어본다.
그가 ‘귀천’에서 읊었던
“아름다웠던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를 내 소풍을 마치면서도 천진난만한 아이 웃음 소리에 맞춰 말할 수 있을까하고.

* 위 : <소풍>의 마지막 장면. 천상병이 이 세상 소풍을 마치던 날의 침상.
* 아래 : 인사. 천상병과 목순옥 역을 한 배우 정규수, 박선희(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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